은총이었네2
성모님, 레지오 마리애
그리고 나
황형호 스테파노 서울 강북 치명자의 모후 Co. 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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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오 단원으로 살아온 지난 34년간, 간부를 하지 못해 안달이 났던 건 아닌가 싶다. 입단 일 년 만에 서기가 이사 가는 덕(?)에 덜컥 맡게 된 간부 이후, 꾸리아 서기, 쁘레시디움 단장 세 번, 꾸리아 단장을 두 번 했고, 꼬미씨움 단장을 두 번째 하고 있기 때문이다. 30대 후반이었던 1990년 7월 입단하여 고희(古稀)를 넘겼다. 지인 손에 이끌려 반강제로 시작한 레지오 활동을 지금까지 단 한 번의 퇴단 없이 성모님의 군사로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은 성모님의 사랑과 도움 덕분이기에 늘 자부심을 가지고 산다. 그동안 이삼십여 명의 교우들을 레지오로 이끌었으면서도 선서하는 새 단원을 볼 때면 그 은총이 부러워 ‘나도 퇴단했다가 재입단해 볼까?’ 하고 상상할 정도로 마음은 레지오 단원의 첫 체험 그대로이다. 
자질과 능력은 부족했지만 간부를 맡으면서 자리가 나를 채워 준 세월이었다. 교육위원을 하면서는 교학상장(敎學相長) 즉, 가르치면서 배운 것들이 나를 성숙시켰고, ‘레지오 마리애가 우리의 내적 생활을 온통 새롭게 해 줄 능력이 있는 생명수의 원천’(교본 285쪽 8-9째 줄)이라는 구절은, 레지오에 단단히 뿌리내리게 해 주었다. 본당 사목위원도 여러 번 해 보았지만, 레지오 단원으로서 ‘튼튼하고 흔들리지 않는 믿음의 길’을 걸으려고, 오른쪽으로도 왼쪽으로도 벗어나지 않고’(잠언 4, 26-27), 좌고우면(左顧右眄)하지도 않으면서 몸과 마음을 다하여 기도로 봉사하며 살아왔다. “숨이 넘어갈 정도로 달리다 보면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라는 어느 스피드 스케이팅 국가대표 선수의 말처럼, 혼신을 다해 레지오 단원으로서 또 간부로서 자긍심을 갖고 살아왔다.
그러나 레지오 단원으로서의 길이 순탄치만은 않았고, 레지오를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던 적도 있었으며, 오랜 시간 간부를 하다 보니 점점 타성에 젖어 형식적이고 습관적으로 되기도 했다. 그러다가 신앙에 대한 회의까지 겹쳤다. 몸은 엄청 바쁘고 머리는 꽉 차 있는데, 정작 마음은 텅 비고 믿음에 대한 갈증은 커져만 갔다. 그래서 무언가에 몰두하기 위해 성경 공부를 했고, 코로나로 미사 참례와 주회합이 중단되자 성경을 쓰기 시작했고, 교리신학원 통신신학부에도 등록했다. 하지만 도리어 갈증은 더 심해지고 믿음은 피폐해지고 신앙은 갈수록 어두워져만 갔다. 어둠 속 공허감과 군중 속의 고독과 같은 깊은 외로움이 문득문득 떠오르며 나를 괴롭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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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 빠진 독에 물을 가득 채우려면 물속에 완전히 잠겨야 한다”
끝이 안 보이는 캄캄하고 암울한 긴 터널을 걷던 때, 신부님 강의 중 한 마디가 들려왔다. “밑 빠진 독에 물을 가득 채우려면 물속에 완전히 잠겨야 한다.” 그제야 ‘아, 내가 밑 빠진 독이었구나!’라고 탄식하며 깨달았다. 마지막 한 알갱이까지 모두 바다에 녹는 순간 “이제 내가 누구인지 알게 되었어!”라고 고백한 소금인형(‘바다로 간 소금인형’, 앤서니 드 멜로 신부)처럼, 나의 모든 것이 온전히 주님께 잠겨 내 마지막 한 알갱이까지 그분께 녹아들어야 비로소 영적 갈증이 해소되고 믿음이 충만해져 주님의 빛을 볼 수 있을 진데, 내면이 아니라 외형적 노력으로만 해결하려 한 어리석음을 발견한 것이다. 
‘이제는 주님을 향한 길을 천천히 걷기만 하면 된다!’라는 믿음을 얻었다. 물론 깨달았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나아갈 길이 어디인지 어느 방향인지 알게 되었고, ‘이제부터는 주님을 바라보며 그 끝을 향해 다가가기만 하면 된다.’라는 희망이 생겼다는 점이다. 영적 고난 중에도 레지오의 끈을 놓지 않고 생활했기에 얻을 수 있었던 성모님의 이끄심일 것이다. 
또 코로나 이후, 주회합이 재개됐을 때 단원 8명 중 단 3명만 다시 모였다. 그동안 단원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었다고 자만했으나 그 결과는 참담하기만 했다. 가장 믿고 아꼈다고 생각한 단원들은 사라지고 오히려 상대적으로 사랑을 못 주었던 단원들이 자리를 지켜 주는 냉정한 현실 속에서 좌절과 무기력을 겪기도 했다. 이 갈등과 상처가 내 생각보다는 ‘성모 마리아가 원하시는 때에, 성모 마리아가 원하시는 만큼, 성모 마리아가 원하시는 방법으로’(레지오 마리애 선서문 중에서)라는 레지오 정신으로 성모님께 온전히 의탁하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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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님, 평안하게 삶을 마감할 때 오시어 저를 품어주소서
성모님의 군사로서 역경을 이겨낸 지난 세월에 고스란히 성모님의 도우심이 느껴진다. 감히 다짐한다면, 생을 마칠 때까지 레지오 단원으로 살겠다고 힘들 때마다 스스로 다독이며 살아왔고, 살고 있고, 또 살아갈 것이다. 고통스럽고 힘든 날이면 어린아이처럼 성모님 팔에 매달리고, 두렵고 불안할 때면 어머니 품 안으로, 상처받아 좌절했을 때는 당신의 따뜻한 위로가 그리워서, 외롭고 슬픈 날에는 의탁하기 위해, 또 기쁨과 행복이 넘칠 때면 엄마에게 자랑하고파서 묵주기도와 함께해 온 나의 삶.
성모님! 어머니! 엄마! 한껏 응석을 부리며 불러보고 싶은 분이시여, 가만히 불러보기만 해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엄마! 어떻게 부를지 몰라, 어떻게 다가갈 줄 몰라, 이제서야 불러봅니다. 엄마! 주님의 종이 평안하게 삶을 마감할 때, 당신께서 오시어 저를 품에 안아 주십시오. 그러면 저는 시메온처럼 노래하렵니다.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 이제와 제가 죽을 때 이 죄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사진설명(위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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