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터전_안동교구 한실교우촌
박해 피한 신앙 선조들의
은둔처
배효심 베로니카 안동 Re.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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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아침 진안리성지(최양업 신부님 선종지) 맞은편 문경 힐링 휴양촌 내 ‘양업명상센터’에 도착하여 미사에 참례했다. 안동교구 마원․진안리성지 전담 정도영 베드로 신부님의 강론을 마음에 간직한 채 ‘신부님과 함께 걷는 성지순례길’에 나섰다. 
복자 박상근 마티아가 좁쌀을 구하러 한실교우촌에 갔다가 깔래 신부(1833~1884)를 자기 집으로 모셨고, 다시 피신시키기 위해 백화산에 올랐지만 길을 잃고 눈물로 이별해야만 했던 험한 산중으로, 포졸들의 발길이 닿지 않아 박해를 피해 70년간 은둔처가 되었던 한실교우촌으로 출발했다. 
한실은 크다는 뜻의 ‘한’과 계곡을 뜻하는 ‘실’이 합쳐진 말로 상내리에서 내려오는 물줄기는 하내리까지 길게 이어져 있다. 상내마을을 지나 백화산의 임도를 가파르게 달려가자 성지 입구가 나타났다. ‘한실성지 1㎞’ 이정표를 뒤로하며 내려간 산길은 며칠 내린 비로 장화 신은 발이 푹푹 빠졌다. 도시에서 생활해 온 나로서는 신앙 선조의 삶을 상상하기가 어렵다. ‘이렇게 깊은 골짜기에서 어떻게 사람이 살았을까?’ 겨울 끝자락에서 비가 내리는 한실교우촌에는 흙과 돌덩이, 마른나무와 물소리, 바람 소리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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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실 교우촌은 문경시 마성면 상내리 백화산 중턱에 있다. (중략) 이곳 한실에 처음으로 신자들이 들어 온 때는 1801년 신유박해 후이다. 당시 상주 이안면 배모기에 살던 서광수의 아들인 서유도의 가족들이 이곳 한실로 피난 와서 살았다. 1812년과 1813년 사이에 충청도 홍주와 연산의 황 바오로, 원 베드로 등이 공주에서 순교할 때, 이곳 한실에 피난 와서 살던 서유도의 부인 전주 이씨가 순교했다. 깔래 신부가 1865년 12월 1일(양력 1866년 1월) 부근의 건학(문경군 동로면 명전리) 교우촌에 성사를 주러 갔을 때, 마침 그 몇 주일 전에 공주에서 순교한 전 사베리오의 부인과 아들이 미사에 참례하고 순교자를 위해서 미사를 청했다. 그 후 곧 병인박해(1866~1873)가 시작되어 신자들은 한실과 백화산을 넘어 연풍 등지로 쫓겨 다녔다. 병인박해 때 상주아문에는 각 교우촌에서 체포되어 이송되어 온 신자 19명이 처형되었다. 그 가운데 한실에서 체포되어 순교한 14명 신자들의 명단은 다음과 같다. 
서태순 베드로, 김 아우구스티노, 김 토마, 김 아우구스티노, 김 안토니오, 김 베네딕도, 김 빈첸시오, 김 프란치스코, 김 생원, 장서방, 장서방 부인, 김 요셉, 김 베드로, 모 막달레나(14명) -1895년 뮈텔 주교의 병인순교자 명단 참조- 상주 옥터 순교자 명단”<신앙 선조들의 숨결을 느끼는 도보 성지 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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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인박해 때 한실에서 체포되어 14명 순교
산길을 내려가니 서유형 바오로와 그의 형수 박 루시아의 무덤이 나왔다. 그들은 병인박해 때 모전에서 체포되어 상주감옥에서 순교하였는데, 한실교우촌의 신자들과 조우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서광수는 훗날 국채보상운동을 주도했던 서상돈의 고조부이다. 한실교우촌 순교자의 무덤은 찾을 수가 없고 흔적도 남아있지 않았다. 황량하고 쓸쓸하기만 했다. 선조 신앙인의 자취를 찾기에 이백여 년의 시간은 너무 오래인데, 신부님은 순교자들의 삶을 알리기 위해 순례길을 만들고 있다.
며칠 내린 비로 콸콸 흐르는 물을 지나자 작고 평평한 옛날 집터가 보인다. 위쪽은 회장님 집터, 아래 두 곳은 교우들의 집으로 추정된다. 그 증거로 깨진 그릇 조각을 모았다. 또 바위 위에 십자가 고상, 도자기 한 조각을 놓아 집터임을 나타냈다. 되돌아 나오는 길목 바위에도 나무 십자가가 서 있다. 잔디가 깔린 넓고 평평한 곳은 제대가 놓일 자리이다. 슬픔과 고통에 빠진 이들, 사고로 가족을 잃은 이들을 위로해 줄 기도자리가 될 것이다. 포크레인도 한 대 서 있다. 신부님은 중장비 운전을 배워서 직접 성지 조성에 관여한다. 또 잊혀 가는 순교자들을 기억하기 위해 기념비석을 만들 계획이 있어서 폐 성물을 모은다. 파쇄한 폐 성물(고상, 묵주 등)에 시멘트를 섞어서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

한 번뿐인 지상의 삶을 버리고 천상을 선택한 믿음
길을 내면서 땅속에 묻은 파이프에는 연중 물이 흐르고 있다. 순교자들의 생명수는 이제 순례자들을 위해 쓰일 것이다. 물맛이 좋다. “청정무구한 옛 모습 그대로 보존된 성지가 한실교우촌입니다. 순례자들이 이곳에서 기도하고 힘을 얻어가도록 차근차근 조성할 생각이에요.” 비를 맞으며 설명하는 신부님의 얼굴이 붉었다. 
뒤돌아보니 성지가 한눈에 들어왔다. 척박하기만 한 산골짜기이지만 하느님 법을 오롯이 지키며 착하게 예수님을 모셨던 신앙 선조들의 삶이 행복할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깔래 신부님과 우리 신부님들이 왜 사제의 길을 선택했겠어요?” 신부님의 강론이 떠올랐다. ‘산속에 숨어 살면서도 신앙을 지킨 순교자들은 기쁘고 행복했구나. 한 번뿐인 지상의 삶을 버리고 천상을 선택한 믿음을 하느님은 다 알고 계실 거야!’ 숨을 들이마시며 힘을 냈다. 
산길을 오르며 올려다보자 상고대가 눈에 들어왔다. 순교자들이 바랐던 구원의 땅인 듯. 산모퉁이를 돌아가는 곳마다 나무에 맺힌 투명한 물꽃과 얼음꽃들은 꼭 순교자들의 맑은 눈망울, 기쁨의 눈물방울 같다. 서둘러 일행들의 뒤를 쫓아가자 신부님의 목소리가 들린다. 산에 나는 꽃과 나무들, 폭우에 쏟아진 돌멩이, 불쑥 튀어나온 뱀들, 미끄러진 트럭이 나무에 걸려 멀쩡했다는 학사님 이야기 등등. 미끄러질까 봐 조심조심 내려갈 때는 보지 못했던 백화산의 풍경을 오감으로 감상했다. 오늘 하루를 감사하며 하느님께 기도한다. “하느님, 저희가 순교자들을 오래오래 기억하고 믿음을 굳세게 가져 순교자들처럼 기쁘고 행복한 삶을 살게 해 주소서.”
<한실성지는 정도영 베드로 성지전담 신부님(010-9944-0145)께 꼭 연락하고 방문해야 한다.>
<사진설명(위로부터)>
- 회장님 집터
- 임도에서 본 계곡
- 서유형 바오로와 박 루시아의 묘
- 집터 표시 바위
- 제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