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호성인 이야기
부부 또는 결혼생활 돕는
수호성인들
이석규 베드로 자유기고가

불목한 부부들을 위한 수호성인, 제노바의 성녀 가타리나(축일 9월 15일)
20240422143628_97847188.jpg15세기 이탈리아 제노바의 성녀 가타리나는 5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성녀는 아우구스티노회 수녀이던 언니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수도 생활에 관심이 있었지만, 부모의 뜻에 따라 16세 때 제노바 상류층의 청년과 결혼했다. 
그러나 민감하고 신중한 편인 아내와 방탕하고 낭비벽 심한 편인 남편 사이의 결혼생활은 행복하지 않았다. 남편의 방탕한 생활로 말미암아 성녀의 가정은 결혼한 지 10년이 지날 무렵 몹시 궁핍해졌고, 이에 성녀는 심각한 우울증에 빠져 힘겨운 나날을 보내게 되었다.
힘들게 지내던 성녀는 어느 날 고해성사를 보던 중에 하느님의 사랑을 강하게 느끼는 신비 체험을 했다. 그리고 이 체험은 성녀를 통절한 회개로 이끌었다. 비슷한 시기에 남편 또한 자신의 무절제한 삶을 뉘우치게 되었다. 남편은 이제 병원에서 환자들을 돌보는 봉사 활동을 시작했고, 프란치스코 제3회 회원이 되었다. 나아가, 성녀 부부는 여전히 큰 곤란을 겪는 가운데서도 제노바의 큰 병원에서 사랑을 실천하는 일에 계속 헌신하기로 마음을 모았다.
얼마 후 성녀는 이 병원의 원장이 되었고, 한편으로는 뛰어난 영성 생활로 많은 이들에게 주목받기 시작했다. 성녀는 병원장이 되던 무렵에 흑사병에 걸렸는데, 투병 중에 심한 고통을 겪었고 한때 사경을 헤매다가 기적적으로 회복되었다. 그 와중에 수도자가 아닌 평신도로 살면서도 천상의 일을 관상하는 영성가로서 비범한 면모를 보인 것이다. 
성녀는 특히 ‘서서히 악으로 물들어 가는 세상의 오염’과 그 틈을 노려서 인간을 하느님에게서 떼어놓으려는 악마의 간계를 크게 두려워하며 경계했다. 그런 한편으로 썩 잘 어울리지 않은 아내와 남편으로서 불행한 듯싶은 결혼생활도 다시금 화목하고 거룩하게 살아냈다.

갈라선 부부들을 위한 수호성인, 성 필립보 하워드(축일 10월 19일)
16세기 영국의 성 필리보 하워드는 귀족 집안의 첫째 아들로 태어났다. 성인은 왕실 가족과 함께 세례를 받고 대부인 에스파냐 왕 펠리페 2세의 이름을20240422143349_1911186962.jpg 따서 이름을 필립보라고 지을 정도로 권력층과 교분이 두터웠다. 그러나 종교 혁명(종교 개혁)의 와중에서 성인의 아버지가 엘리자베스 1세 여왕에게 맞서는 음모에 가담했다는 죄목으로 체포되었고 참수형을 당했다. 그런 까닭에 성인은 아버지의 공작 지위를 이어받을 수 없게 되었다.
대학을 마친 성인은 어렵사리 여왕의 궁궐에 들어가서 일하게 되었지만 영광보다는 모욕과 고통에 맞닥뜨렸다. 성인은 여왕의 핍박을 피하고 여왕의 환심을 사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했다. 가령 가톨릭 신자이던 아내를 무시하고 멀리하기까지 했다. 그러던 중에 가톨릭 신학자들과 프로테스탄트 신학자들 사이에 벌어진 논쟁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그때 가톨릭에 깊이 감화해서 영적으로 회심했다. 이는 진심에서 우러나온 회심이었다. 이후 성인은 틈만 나면 신심 서적을 쓰거나 번역하여 영국 내의 가톨릭 운동에 힘을 보탰다.
그러나 성인의 회심은 엘리자베스 1세 여왕 그리고 영국 정계와 관계로부터 강한 반발을 받게 되었다. 성인은 결국 여왕에 항거하는 몇몇 음모에 연루되었다는 의심을 받고 피신하려다가 체포되어 런던탑 감옥에 갇혔고, 반역죄로 사형을 선고받았다. 여왕이 ‘한 번만 프로테스탄트 예배에 참석하면’ 아내와 그리고 성인이 감옥에 갇혀 있던 동안에 태어난 아들을 볼 수 있게 해줄 뿐만 아니라 명예와 재산도 회복시켜 주겠노라고 성인을 회유했지만, 성인은 끝내 이에 굴복하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의 입신양명을 위해 의도적으로 멀리했던 아내며 가족과 화해한 뒤 런던탑 감옥에서 숨을 거두었다.

재혼 가정을 위한 수호성인, 성녀 마틸다(축일 3월 14일)
20240422143402_1545132603.jpg10세기의 성녀 마틸다는 덴마크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14살에 독일의 귀족 하인리히와 결혼했다. 성녀에게는 첫 결혼이었고, 하인리히에게는 두 번째 결혼이었다. 결혼 10년 뒤에 독일의 왕이 된 하인리히 1세와 왕후가 된 성녀는 자녀 다섯을 두었다. 장남 오토는 독일과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되었고, 차남 하인리히는 바이에른의 공작으로서 형인 오토에게 반기를 들었고, 막내 브루노는 교회의 성인이 되었다. 그리고 장녀 게르베르는 프랑스 왕 루이 14세와 결혼했고, 차녀 하드비히는 프랑스의 카페 왕조를 개창한 위그 카페를 낳았다.
성녀는 훗날 남편이 사망하자 둘째 아들이 왕위를 계승하기를 바랐으나, 그 자리는 남편의 유지대로 장남인 오토에게 돌아갔다. 이러한 갈등으로 장남과 관계가 냉랭해진 성녀는 왕궁을 떠나 수도원에서 지내면서 지참금과 남편에게서 물려받은 재산으로 여러 곳에 수도원을 세우고 가난한 사람들을 후원하며 기도 생활에 전념했다. 그런 가운데 한편으로는 왕인 장남에게서 지나친 자선 활동으로 국가의 재산을 축낸다는 비난과 푸대접을 받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차남이 장남에게 반역하는 권력 투쟁의 틈바구니에서 고통스러워하며 힘든 나날을 보냈다. 그러다가 장남 오토와 화해한 뒤 선종했다.
성녀는 재혼 남편을 만나 겸손과 인내심을 바탕으로 가정을 화목하게 꾸리고 자녀를 잘 키운 부모로서, 그리고 가난한 이들과 수도원의 신심 깊은 후원자로서 널리 공경받는다.

행복한 만남을 이어주는 수호성인, 성 라파엘 대천사(축일 9월 29일)
구약성경 토빗기에 따르면, 성 라파엘 대천사는 영광스러운 하느님 앞에서 대기하고, 또 그분 앞으로 들어가는 일곱 천사 가운데 하나로(12,15), 토빗과 사라가20240422143700_1121132331.jpg 기도했을 때 그들의 기도를 하느님 앞에 전해 드렸다(12,12). 그리하여 하느님께서는 라파엘 대천사를 보내 토빗과 사라를 돕게 하셨다. 이에 라파엘 대천사는 천사라는 신분을 감추고 아자르야라는 이름으로 위장하여 아버지의 뜻에 따라 메디아로 길을 떠나는 토비야와 동행했다(5장). 그러면서 엑바타나에서 악령에 들려 고생하던 라구엘의 딸 사라를 도와 마귀에게서 벗어나게 해 주었고 또한 토비야와 혼인할 수 있게도 해주었다(8장). 그리고 토빗의 친구 가바엘에게 가서 맡겼던 돈을 찾아왔고(9장), 마침내 토빗의 시력도 되찾아 주었다(11장).
성경은 천사의 수가 적지 않음을 시사하는데, 우리가 이름을 알 수 있는 천사는 라파엘 대천사 외에 미카엘 대천사, 가브리엘 대천사뿐이다. 그리고 라파엘이라는 이름에는 ‘하느님께서 치유하신다’라는 뜻이 있다. 전해 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일부 교만한 천사들이 한때 하느님께 맞서 죄를 지었고, 타락한 천사들이 저지른 죄로 말미암아 세상이 더러워졌는데, 이 세상을 라파엘 대천사가 다시 말끔하게 치유했다고 한다. 또한 이따금 벳자타 못에 내려와 물을 출렁거리게 한다는 천사(요한 5,1-4 참조)가 바로 라파엘 대천사라고 한다.
이렇듯 성 라파엘 대천사는 하느님의 뜻을 받들어 토빗과 사라에게 그분의 치유를 선사했다. 그리고 사라와 토비야에게는 더는 불행에 시달리는 일 없이 복을 누리며 살 수 있도록 행복한 만남을 주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