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김수환 추기경
가슴에서 우러나온 미소
전현숙 글라라 인천 검단동성당 사랑의 모후 Pr.

극장 안이 갑자기 술렁대는 걸 느꼈다.
벌써 십여 년 전의 일이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라는 영화를 보러 갔었다. 명동의 중앙극장. 호주의 배우 멜 깁슨이 제작하고 특히 영어가 아닌 ‘아람어’로 촬영되었다고 해서 화제를 몰고 온 영화였다. 익히 알고 있는 예수님의 수난에 관한 영화였지만, 나는 영화 장면보다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아람어라는 언어가 궁금했다. 예수님은 어떤 언어로 말씀하셨을까 하는 쪽에 더 호기심을 갖게 하는 영화였다.
거의 앞자리에 앉아서 영화가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여기저기서 술렁이는 움직임이 느껴졌다. 술렁거림을 좇아 뒤를 돌아보니, 세상에나, 이럴 수가! 김수환 추기경님과 정진석 추기경님이 나란히 입장하신 것이었다. 그것도 내 자리에서 몇 칸 뒤쪽이었다. 두 분은 다 훤칠하실 거로 생각했었는데, 내가 상상했던 것과는 달리 그리 큰 키는 아니셨다. 만면에는 온화한, 그렇다! 온화함이란 단어가 제일 잘 어울릴 것이다. 그런 미소를 짓고 환호하는 사람들에게 미소로 화답하셨다. 
정 추기경님은 사진에서 보이던 근엄함과는 달리 너무나 순박한 할아버지 같은 얼굴이라 새삼 놀랐다. 친정아버지는 6·25 때 부산으로 피란 가 천막으로 차려진 임시 대학에서 정 추기경님과 같은 강의실에서 공부했다고 늘 자랑하시곤 하셨었다. 두 분 다 회색 스웨터를 입으셨던 거로 기억된다. 두 분의 모습은 곱게 인생을 살아온 오랜 친구 같기도 하고, 형님 아우 모습 같기도 했다. 서로 깍듯이 배려하는 소박한 모습은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흐뭇했다. 지금처럼 스마트폰이 있던 시대가 아니라 사진도 남기지 못했다.

극장에서 만난 추기경님은 편안하고 평화로운 어른의 모습
내가 그때까지 생각했던 김수환 추기경님은 두 가지 얼굴로 알고 있었다. 낮은 곳, 어두운 곳, 소외된 사람을 기억하고 찾아다니시던 모습. 또 하나는 70년대 중후반 유신 시대에 학교에 다녔던 나는 중앙청 앞에 탱크가 세워져 있고, 내가 다닌 여고 근처에서 탱크를 보는 것이 일상이었던 시대였다. 80년대에 사회와 군부 독재 정부를 향해 일갈하든, 힘차고 가슴 뜨겁게 하던 김 추기경님의 강론은 정말 명문으로 기억한다. 신자, 비신자를 떠나 세상의 빛으로 계시면서 던져 주셨던 그 문장을 읽고 가슴 두근거리지 않을 사람이 있었을까? 
엄혹했던 시대였다. 무섭고 어두웠지만, 앞장서서 막아준 큰 어른의 모습으로만 기억했는데, 그날 극장에서 뵈었던 모습은 편안하고 평화로운 어른의 모습이어서 너무나 좋았다. 그 뒤로 추기경님이 세상을 떠난 후, 추기경님에 관한 얘기나 책이나, 다큐를 보면 항상 극장에서 뵈었던 모습이 함께 기억된다.
추기경님이 선종하셨을 때, 나는 필리핀 마닐라에서 살고 있었다. 많은 필리핀 지인들이 추기경의 선종 소식에 조의를 표했었다. 우연히 리잘 대학 총장 신부님을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그분도 카디널 스테파노의 선종을 얘기하면서 한국의 국민들이 무척 슬퍼하겠다며 위로와 평안을 빈다고 말씀하셨었다. 그 엄혹했던 비슷한 시기에 필리핀에도 마르코스의 치하에서 신 추기경이란 분이 계셨었다.
최근 우리 사회에 일어난 사건들을 보면서 추기경님 지금 살아계셨다면 어떤 말씀으로 용기와 위로를 주셨을까? 생각해본다.

약자를 대변하고 시대의 아픔을 막는데 앞장섰던 추기경님
나는 로댕의 ‘칼레의 시민들’이란, 죽음을 향해 나가는 다섯 명 시민들의 조각을 볼 때 드는 생각이 있다. 그중 가장 아름답기까지 한 젊은이를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그리고 조각의 나이 든 노인의 모습은 약자의 입장을 대변하셨고, 시대의 아픔, 부조리한 사회에서 속에서 공감하고 막아 앞장서 대변하려 했던 큰 어른이셨던 추기경님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신을 바보라고 했던 추기경님의 글이나 다큐멘터리에서 선종하신 후 애도하기 위해 줄을 섰던 사람들의 행렬을 보면서, 그분은 시대의 큰 어른이셨구나. 그분인들 고뇌와 십자가가 없었을까마는 그분과 동시대에 살았다는 것이 참 감사하다.
‘사랑이 머리에서 가슴에 내려오는 데 70년이 걸렸다’는 그 말씀, 올해 94세이신 내 어머니도 이 말씀을 자주 인용하신다. 나에게도 그 말씀은 너무나 어려운 말이라 그 말씀조차도 무척 용기 있는 말씀이었다고 생각된다.
영화관에서 만났던 아주 짧은 시간이 뭐 대수냐고 할 수도 있지만,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만남같이 느껴지는 것은 그만큼 그분들의 그늘이 커서일 것이다. 나도 그런 따뜻함과 평화로움을 줄 수 있는 용기 있는 어른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