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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장례(葬禮)희망은?
강원남 베드로 행복한 죽음 웰다잉 연구소 소장

외국인이 바라본 한국의 장례식
장례식은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는 자리이며, 마지막 예를 다하는 의식입니다. 염을 하고, 수의를 입히고, 입관을 합니다. 고인의 떠남을 슬퍼하는 이들이 찾아와 마지막 인사를 나눕니다. 가족들과 슬픔을 나누며 위로합니다. 그리고 시신을 다시 돌려보냅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장례식의 의미가 오늘날 점점 퇴색되고 있습니다. 
아일랜드가 고향인 워렌 닐랜드 교수는 처음 본 한국의 장례식이 낯설었다고 합니다. 복도에는 긴 조화 행렬이 늘어서 있고, 유족들은 방 한구석에서 쪽잠을 자며, 고인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북적거렸습니다. 조의금을 내기 위해 현찰을 주고받고, 유족과 조문객들이 웃고 떠들며, 밤새도록 화투장을 돌리는 모습이 생소했다고 합니다. 고인에 대한 추모는 사라진 채, 번호표를 받고 순서를 기다렸다가 장례식을 치르고 화장(火葬)하는 모습이 마치 패스트푸드점처럼 느껴졌으며, 주인공이 빠진 생일 파티처럼 보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는 한국을 좋아하지만, 한국식으로 죽고 싶지는 않다고 말합니다. 이와 같은 심경이 한국인인 저 역시도 공감이 되었습니다.

가족 중심이 아닌 전문가 중심의 장례식
한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평균 장례비용은 1,600만 원이라고 합니다. 마지막 가시는 길을 섭섭하지 않게 모셔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적지 않은 비용입니다. 왜 이렇게 많은 돈이 들까요? 1970~80년대에는 대부분 집에서 가족 친지와 이웃들이 함께 모여 장례식을 치렀습니다. 고인을 모시는 장지는 선산이나 공원묘지였습니다. 그래서 많은 비용이 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집에서 장례를 치를 수 없습니다. 장례를 치를 줄 아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장례는 장례식장에서, 장례 전문가들이 중심이 되어 진행하게 됩니다. 조문객을 위해 식사를 접대하고 부대시설을 이용하는 데도 많은 돈이 듭니다. 
그런데 아이러니 하게도 정작 장례식장에 고인은 없습니다. 고인의 시신은 영안실 냉동고에 안치되어 있습니다. 고인이 없는 자리에서 고인을 추모하는 어이없는 장면이 연출됩니다. 3일간의 장례식 동안 유가족들은 몰려오는 조문객을 응대하느라 경황이 없습니다. 가장 위로받아야 할 이들이지만, 위로받을 시간조차 없습니다. 또한 장례식 비용, 조의금 정산, 유산 분배로 가족 간의 갈등이 드러나기도 합니다. 한국의 장례식은 이처럼 고인을 떠나보낸 예를 다하고 슬픔을 추스르기보다 보여지는 것이 우선인 행사가 되어버렸습니다.
하지만 뜻깊은 장례식은 고인을 추억하며, 남은 이들을 위로하고, 기쁘게 작별하는 순간이 될 수 있습니다. 장례식을 통해 가족이 화합하고, 고인의 뜻을 이어가며, 앞으로의 삶을 살아갈 새로운 힘을 얻게 되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장례식은 고인이 가족과 남은 이들에게 전해주는 마지막 선물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레이스 리 그리고 허순길 목사님의 장례식
한국 미용계의 대모로 불렸던 그레이스 리(이경자)의 장례식은 특별했습니다. 그녀는 10년간의 암 투병 중에도 웃음을 잃지 않던 긍정적인 성격의 소유자였습니다. 그러나 2011년, 결국 긴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녀는 생전 평소 성격대로 자신의 죽음과 장례식에 대해서 즐겁게 이야기했습니다.
“나 죽으면 갖고 있는 옷 중에 제일 예쁜 옷 입고 와야 해. 그리고 꽃도 말이야, 왜 장례식장에서는 흰 꽃만 쓰지? 난 핑크나 빨강처럼 예쁜 게 좋아. 그리고 절대 울고 짜고 하지 마. 음악은 아주 경쾌한 걸로 틀었으면 좋겠어. 죽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야. 그러니 좋지 않겠어? 장례식도 경쾌하게 치르면.” 제사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습니다. “내가 죽은 날에 모이지 말고 그냥 내 생일에 모여. 절대 홍동백서 같은 제사 음식 차리지 말고 맛있는 음식 만들어서 즐겁게 먹어. 내가 없으니 내 흉 실컷 보면서 실컷 웃어. 그럼 내가 하늘나라에서 지켜보고 따라 웃을 거야.”
효자였던 아들은 어머니의 말씀을 따라 장례식을 치렀고, 어머니의 생일에는 가족들이 함께 모여 어머니께서 즐겨 드시던 음식을 차려놓고 어머니를 추억했습니다. 열정적으로 살아왔던 그녀의 장례식은 살아온 모습 그대로 아름답게 치러졌습니다.
2017년 1월 소천하신 허순길 목사님의 장례식도 깊은 울림이 있습니다. 장례식장을 찾은 사람들을 당황했습니다. 영정이 있어야 할 나무 테이블에는 장례예식 알림이라는 안내지가 붙어 있었습니다. “본 장례식장은 故 허순길 목사님의 유언에 따라 부의금을 사양하오며 조화를 사양하오며 영정을 설치하지 않으며, 유족들과 위로의 문안하는 것으로 상례를 대신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유족 일동.”
안내 그대로 장례식장에는 영정사진이 없었고, 이름, 꽃, 부의함도 없었습니다. 장례 예배도 없었습니다. 영정사진이 있어야 할 제단에는 성경 말씀이 적혀 있는 현수막만 붙어 있었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서도 살겠고 - 요한복음 11장 25절’
가족들은 조화도 돌려보내고 부의금도 받지 않았지만 조문객들에게 음식을 대접했습니다. 발인 후에도 가족들만 가서 하관하기로 했다며 장의 버스도 준비하지 않았고, 시신 안치실에서 꺼낸 관은 리무진이 아닌 응급구호 차량에 실려 운구되었습니다. 허순길 목사님은 평소 검소하게 살아오신 삶 그대로 자신이 생각해온 신앙의 뜻을 마지막까지 몸소 실천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죽은 뒤에도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하느님을 드러낸 고인의 성품을 추모했습니다.

스스로 준비하는 장례식, 사전장례의향서(事前葬禮意向書)
이처럼 자신의 장례 방식을 미리 준비한다면, 유가족들은 혼란이 없을뿐더러,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이별할 수 있습니다. ‘사전장례의향서(事前葬禮意向書)’는 사망 이후에 자신이 바라는 방식으로 장례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생전에 미리 작성해두는 양식을 말합니다. 부고 여부, 장례식 진행 방식, 종교에 따른 장례 형식, 장례를 치르는 기간, 부의금 및 조화 여부, 조문객에 대한 음식 대접, 염습 여부, 수의 방식, 관의 종류, 시신 처리 방식, 삼우제와 사구재 진행 여부를 선택할 수 있으며 기타 영정사진, 제단 장식, 배경음악에 대한 의견을 남길 수도 있습니다. 
오늘의 글 제목 그대로 여러분의 장례(葬禮)희망은 어떠신가요? 죽음을 공부하면 우리는 더 잘살 수 있습니다. 나의 마지막 이별 장면을 상상해본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고민해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장례(葬禮)희망을 통해 더 나은 장래(將來)를 희망해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