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징 속 성인 읽기
사도들의 상징(2)
이석규 베드로 자유기고가

뱀이 들어 있는 성작: 사도 성 요한
요한복음 1,35-39에 나오는 예수님의 첫 두 제자들 중 하나로 여겨지는 요한(다른 한 사람은 안드레아)은 안드레아와 함께 예수님을 따라나섰고, 예수님은 물고기를 잡는 어부이던 이 둘을 사람 낚는 20250422172915_1955131182.jpg어부로 부르셨다. 성경에서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제자라고 소개되는 인물로 여겨지는 요한은 12사도들 중 가장 젊었고, 다른 사도들보다 오래 살았으며, 다른 사도들이 모두 순교한 가운데 유일하게 순교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견이 없지는 않지만, 복음서와 3권의 서간과 묵시록을 쓴 저자라고 전해진다.
형인 대 야고보와 함께 보아네르게스(‘천둥의 아들들’이라는 뜻)라고 불린 요한은 호의적이지 않은 사마리아 사람들의 마을에 하늘에서 불을 불러 내려 불살라 버리고 싶다는 생각도 했고(루카 9,54-55 참조) 예수님을 따르지 않는 사람이 그분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것을 보고 막으려고도 했다(마르 9,38-40 참조). 그리고 그럴 때마다 예수님께 꾸중이나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사람은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라는 가르침을 들었다.
요한은 베드로와 야고보, 더러는 안드레아와 함께 중요한 일들을 많이 했다. 그리고 예수님의 지상 생애의 마지막 순간들, 그분이 겟세마니 동산에서 잡히시어 끌려가신 대사제의 관저에도,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계신 자리에도, 예수님이 되살아나신 뒤 빈 무덤에도 베드로와 함께 또는 단독으로 자리했다.
전승에 따르면, 요한이 이교의 사제를 만났는데, 그 사제가 요한에게 잔을 내밀며 마시라고 했다. 독이 들어 있는 잔이었다. 잔을 받은 요한은 기도하고 축복했다. 그러자 잔 안의 독이 뱀으로 변해 밖으로 나왔다. 이렇게 요한은 죽음을 면했고, 나아가 그 독을 마시고 이미 죽었던 사람 둘을 되살리기까지 했다. 그리하여 뱀이 들어 있는 잔(성작)은 요한 사도를 나타내는 상징이 되었다.

몽둥이(또는 톱): 성 소 야고보 사도
예수님의 사도 중에는 2명의 야고보, 곧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가 있다(마태 10,2-4; 마르 3,16-19, 루카 6,14-16 참조). 이에 교회는 전통적으로 제베대오의 아들을 큰[大] 야고보라고, 알패오의 아들을 작은[小] 야고보라고 구별해서 불러왔다. 아마도 나이가 많고 적은 데 따른, 아니면 키가 크고 작은 데 따른 구별인 듯싶다.20250422172941_1852169719.jpg
성경은 소 야고보와 관련해서 ‘주님의 형제 야고보’라고(마태 13,55; 마르 6,4, 갈라 1,19 참조) 하고, 그 어머니가 마리아라고(마태 27,56; 마르 15,40; 마르 16,1; 루카 24,10 참조) 말한다. 이를 바탕으로 성 예로니모와 성 아우구스티노 같은 학자들은 소 야고보가 예수님과 인척이고 예수님의 어머니와 작은 야고보의 어머니가 자매라고 보았다. 그런가 하면 소 야고보의 몸매와 얼굴과 행동거지가 예수님과 매우 닮아서 ‘예수님의 형제’로 불렸다고, 또는 품성과 성덕이 뛰어나서 ‘의로운 야고보’라고 불렸다고 한다.
전승은 소 야고보가 예루살렘 교회의 첫 주교였다고 말한다. 이방인 출신 그리스도인들과의 갈등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예루살렘에서 사도 회의가 열렸을 때, 베드로는 이민족도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선언했고, 소 야고보는 베드로를 도와 ‘하느님께 돌아선 이들에게 어려움을 주지 말고 부정한 음식과 불륜을 멀리하게 하자는 구체적인 해결 방안을 제시했다(사도 15,19-20 참조). 이러한 소 야고보를 두고, 바오로 사도는 베드로와 요한과 아울러서 ‘교회의 세 기둥’이라고 말한 바 있다(갈라 2,9 참조).
다른 전승은 소 야고보가 팔레스티나의 남서 지역과 이집트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이집트 또는 시리아에서 순교했다고 전한다. 열정적인 복음 선포에 분노한 이교도 군중이 소 야고보를 신전 지붕에서 내던진 뒤 그에게 돌을 던졌고, 그래도 죽지 않자 몽둥이로 때려서 숨지게 했다고 한다(또는 돌에 맞아 쓰러진 그를 톱으로 잘랐다고 한다). 그리하여 몽둥이 또는 톱이 소 야고보 사도를 가리키는 표상이 되었다.
한편, 학자들 사이에는 소 야고보와 예수님의 형제 야고보가 동일 인물이 아니라며 이의를 제기하거나 예루살렘의 첫 주교로서 신앙과 윤리에 관한 기본 가르침을 편지 형식으로 쓴 야고보 서간이 소 야고보의 작품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십자가와 빵 두 덩이(또는 빵이 가득한 바구니): 사도 성 필립보
20250422173002_1827380815.jpg공관 복음서와 사도행전에 12사도 중 다섯 번째로 짤막하게 나열되는 필립보에 대해서 요한 복음서는 좀 더 많은 것을 말해 준다. 필립보는 베드로와 안드레아와 함께 벳사이다 출신으로, 요한 세례자가 예수님을 가리켜서 ‘하느님의 어린양’이라고 말하던 자리에 있었고, 나타나엘을 예수님께 소개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5천 명을 먹이는 기적을 행하셨을 때는 그분에게서 빵을 어디에서 살 수 있겠느냐는 물음을 받았다(요한 6,6 참조). 그리스 사람 몇몇이 예수님을 만나 뵈러 찾아왔을 때는 안드레아를 통해 이 사실을 예수님께 말씀드렸고(요한 12,21-22 참조), 마지막 만찬 때는 하느님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사고 청함으로써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느님 아버지와 당신의 일체성에 대해 가르치실 기회를 마련해 드렸다(요한 13,8-9 참조).
전승에 따르면, 필립보는 바르톨로메오와 함께 그리스, 프리기아, 시리아로 파견되었고, 그곳에서 설교와 기적적인 치유로 한 도시의 총독의 아내를 개종시켰다. 이에 격노한 총독은 필립보를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았다. 필립보는 십자가에 달려서도 설교를 했으며, 십자가에서 풀려날 수도 있었음에도 풀려나기를 거절했다. 한편, 필립보가 십자가에 못 박히지 않고 참수로 순교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리하여 십자가와 빵 두 덩어리 또는 십자가와 빵이 가득 담긴 바구니가 필립보 사도를 나타내는 표상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