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가 모두 내 마음 같이 돌아가지는 않는다는 생각이지만 그래도 나보다 내 주변의 어려운 사람들을 살피고 애정을 가지고 살아가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35년간의 공직을 퇴임한 지 3년이 되었다. 생각해보면 그래도 공직생활 하던 때가 행복하고 걱정이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2011년 장인어른이 계시는 요양원에 문병차 들렸다가 그곳에서 이·미용 봉사를 하는 봉사자들을 만나면서 나도 봉사해 보아야겠다는 마음으로 이 니콜라오 회장과 동행한 것이 봉사의 시작이었다.
군대 생활 중 소대 자체 이발을 도맡아 하던 희미한 기억으로 시작한 것이 열심히 봉사에 동참하다 보니 몇 개월 지나지 않아 이발의 베테랑이라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렇게 봉사를 시작하여 경찰공무원 특성상 주야 교대근무로 1주일에 2~3일은 봉사에 참여할 수 있었고 봉사에 참여할수록 힘과 용기가 생기고 삶의 활력이 되었다. 나의 봉사에 피곤함이란 없었다. 봉사는 곧 나의 활력이 되고 에너지였으며, 직장에서도 수많은 칭송과 표창이 뒤따랐다.
11여 년의 봉사 기간 동안 전북무궁화 대상, 경찰청장 표창, 행정안전부장관 표창, 보건복지부장관 표창 그리고 승진의 영예도 있었다.
그렇게 봉사를 이어가는 중에도 레지오 마리애 쁘레시디움 서기를 6년, 꾸리아 서기를 6년간 해 왔으며, 내 건강과 에너지가 남는 데까지 열심히 봉사하려고 노력하였다.
2022년 5월 공석이 된 레지오 꼬미씨움 단장을 하라는 신부님의 권유로 기꺼이 단장을 맡았다. 2022년 6월 정년퇴임 후 곧바로 중학교 지킴이 활동을 하게 되어 이․미용 봉사 활동을 자주 할 수는 없게 되었지만, 오랫동안 개인적으로 봉사하는 시설 몇 군데에서 정기적인 이발 봉사를 하고, 방학기에는 봉사단과 함께 즐거운 봉사를 하고 있다.
10여 년 동안 여러 시설에서 정기적인 이발 봉사
본당에서는 사목회 총무 2년 임기를 마치자, 사회복지분과장을 맡아 봉사해 달라고 하여 빈첸시오회와 함께 주변의 어려운 이웃을 찾아 매달 도시락 나눔과 기도와 위로의 시간을 늘려가고 있다.
정해진 시간의 제약으로 퇴직 후에는 오히려 이발 봉사의 시간이나 기회가 줄었지만, 오후 퇴근 후에는 10여 년간 봉사하고 있는 솔내문화복지관 내 척수장애인협회에 매일 들러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들과 대화도 나누고 이발도 해드리고, 나의 숨겨진 또 하나의 재능인 서예(초대작가)의 글솜씨를 자랑삼아 장애우들과 함께하며 그들의 정신적인 건강과 치유로 사회생활의 적응도 돕고 있다.
2022년 10월에 척수장애인 휠체어 자전거 만경강 종주 60km로, 세종시에서 금강하구둑까지 120km 금강 종주에 동행하였고, 2023년 4월 21일부터 4월 29일까지 9일간 파주 임진각에서 해남 땅끝마을까지 600km의 장거리 휠체어 장애인 국토 종주에 동행하며, 때로는 감동으로 때로는 간절함으로, 그리고 아픔과 안타까움으로 땀과 눈물로 함께한 시간도 있었다.
나의 봉사는 언제나 동행해주시는 성모님의 보살핌 덕분
2023년 ‘사랑 실천의 해’ 주교님의 사목 지침에 따라 힘은 들었지만 빈첸시오회와 같이 사랑 실천을 할 수 있는 대상을 찾아 열심히 활동하여 교구 내 사회복지 분야 우수본당이 되었고, 전주교구청 ‘사랑 실천 체험 수기’ 공모에 참여하여 그동안의 나의 봉사에 대한 소감과 활동 내용으로 최우수상인 ‘성부상’을 주교님께 받는 크나큰 영광도 있었다.
성모님의 군단 레지오 단원으로, 송천 치명자의 모후 Co. 단장으로, 송천성당 사회복지분과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나의 생활은 언제나 동행하고 계시는 성모님의 보살핌과 사랑이 있기에 그리고 늘 건강하게 돌보아주시는 하느님의 은총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끝으로 내가 소속되어 있는 송천 치명자의 모후 Co. 직속 사도들의 모후 Pr.이 2025년 3월 19일 1,900차 주회를 맞이하여 더욱 영광스럽고 기쁘다. 30년간 Pr. 막내로 살아오면서 선배 단원들의 따뜻한 사랑과 배려 그리고 가르침이 있었기에 오늘의 내가 있어 더욱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