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현 마태오 신부는 2001년 인천교구에서 서품을 받았으며 2007년 바티칸 우르바노 대학 선교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인천교구 사목국 새복음화부 담당 겸 인천교구 바다의 별 레지아 담당사제를 역임했으며, 현재 인천가톨릭대학 송도캠퍼스 기획처장으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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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제3주간(5월 4-10일)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어느 설날에 동생네 집에 갔었습니다. 10살인 제 조카가 저에게 와서 자신의 부모님 눈치를 보며 조용히 이야기하였습니다.
“큰아빠, 저 설 선물로 레고 사주세요~.”
당시 조카는 레고라는 장난감에 빠져 동생 부부에게 매일 레고를 사달라고 졸라댔지만 아이들 장난감치고는 고가이다 보니 사주기가 쉽지 않을 때였습니다. 더구나 주머니가 가벼운 큰아버지 신부에게 그런 부탁을 하는 것이 어지간히 부모 눈치가 보였나 봅니다. 그런 조카가 귀여워 장난삼아 이렇게 답변하였습니다.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고, 한 살 더 먹었으니 큰아빠가 너에게 레고를 사줘야 하는 이유를 논리적으로 설득해보렴, 서론, 본론, 결론으로 합리적으로 말해보렴.”
알아들을 수도 없는 조건들을 걸면서 저는 귀여운 조카가 당황해하는 모습들을 기대했습니다. 그리고 장황한 이유들을 어떻게든 설명하려는 조카를 그렸습니다. 그런데 조카는 조금의 고민도 없이 저를 바라보며 딱 한 마디를 이야기했습니다.
“그거는 큰아빠도 저를 사랑하시니까요.”
저는 지갑을 챙겨 조카를 안아 들고 레고를 사러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른 어떤 이유나, 합리적 설명보다 사랑에 대한 확신에 응답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기에 사람이 되시고,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의 생명을 나눠주십니다. 하느님이 어떻게 피조물이 되고, 고통을 받다가 죽을 수 있고, 영원이라는 생명을 줄 수 있는지 우리는 잘 모릅니다. 그러나 사랑 때문에 이 불가능을 가능하게 바꾸셨습니다.
부활하신 하느님은 우리가 당신의 사랑에 응답하기를 바라십니다. 세상을 살아가기가 어렵고, 여러 유혹도 많고, 교회의 공동체에 나를 힘들게 하는 이웃도 있고, 용서하는 것은 물론 사랑하기도 어렵고, 심지어는 주일을 지키기도 힘든, 우리를 불가능하게 하는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에 승리하게 만드는 고백이 있습니다.
“저도 주님을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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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제4주간(5월 11-17일)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예전 초임 사목지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신설 본당에 부임하여 성당 건물도 없어, 아파트 상가 창고에서 본당을 꾸리게 되었습니다. 본당 운영을 위한 수많은 모임뿐 아니라 신학교 강의와 여러 강의도 나가야 했기에 녹초가 되기 일 수였습니다.
이런 생활 속에서 어느 주일, 교중미사를 봉헌하게 되었습니다. 이미 새벽 6시부터 미사를 봉헌한 세 번째 미사이기에 쉬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습니다. 그날 교중미사 전 어느 가정이 차 축복을 부탁하였기에 ‘빨리 축복식을 하고, 사제관에 들어가 좀 쉬자’라는 마음이었습니다. 상가 성당이었기에 예식서를 들고 지하 주차장 계단을 피곤한 모습으로 터벅터벅 내려가는데, 계단 밑에서 8살쯤 된 언니와 그보다 어린 여동생이 함께 저를 바라보았습니다. 차 축복을 받으려는 가정의 딸들이 신부님이 언제 오나 하고 계단에서 기다리던 것이었습니다. 두 자매는 저를 보더니 부모님께 달려가 알리며 먼저 동생이 큰 목소리로 소리쳤습니다.
“엄마, 지금 하느님이 내려오셔.”
그리고 이어진 언니의 말을 들으며 제 얼굴에는 미소가 지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냐, 하느님 아니야, 예수님이야.”
자랑스럽게 동생의 말을 정정해주는 언니의 당당함을 바라보며, 피곤함에 지쳐 빨리 쉬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저의 모습에 얼음물을 한 바가지 붓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사제인 저를 하느님, 예수님으로 알아보는데 나 자신이 거룩한 자세로 임하고 있는지 성찰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해 그날이 가장 정성스럽게 한 차 축복식이 되지 않았나 합니다.
주님께서는 내 양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듣고, 자신을 주인으로 알아본다고 합니다. 우리는 주님을 어떻게 알아보고 있습니까? 주일만 함께 해야 하는 분, 평상시에는 관심도 없다가 우리가 은총이 필요할 때 곶감 빼먹듯 작은 창고가 되는 분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제대로 주인이신 주님을 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제대로 주님을 알아볼 때 주님도 더 큰 사랑으로 우리를 안아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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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제5주간(5월 18-24일)
“그렇게 배웠으니 그렇게 했을 뿐”
신앙인이기 때문에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을 행하기도 합니다. 지금으로부터 20년도 더 된, 제가 보좌신부 때의 일입니다. 70세를 바라보시는 어머니와 이제는 한 가정을 이룬 성인이 된 딸이 갈등하게 된 사건을 털어놓았습니다.
“저는 어머니를 이해할 수 없어요. 사실 어머니는 부모님들만의 합의로 신랑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혼인하셨어요. 시댁에 들어가 사시면서 저와 동생을 낳으셨는데, 아버지가 어느 날 집안의 재물을 몰래 들고 나가 다른 여자와 살림을 차린다고 사라졌어요. 그런데 어머니는 홀로 시부모님을 모시고, 자녀들을 키우며 고생하고 사셨어요. 아버지는 완전히 집안과 연을 끊고 어디에 사는지도 모른 채 지금까지 살았고요. 그런데 사회복지사를 통해 연락이 왔어요. 아버지의 이름을 말하며, 병들어 움직이지도 못하는 아버지의 가족관계를 찾아 연락하게 되었다고. 이 연락을 받고 어머니는 고민하시다가 아버지를 자신의 집으로 모시겠다고 했어요. 물론 저와 동생은 아버지의 얼굴도 기억도 없을 뿐 아니라, 어머니의 고생을 알기에 반대했는데 어머니는 아버지를 집으로 모셔 와 마지막까지 돌보셨어요.”
저는 이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라 어떻게 그러실 수 있는지를 물어보았습니다.
“이제는 잊고 지낸 사람이기에 저도 처음에 놀랄 수밖에 없었어요. 그리고 기도했어요.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예수님이 말씀하셨잖아요. 원수도 사랑하라고... 지금까지 많은 고생을 하면서 살았어도 예수님이 정말 힘이 되었고, 은총도 많이 받아서 아이들도 잘 키울 수 있었어요. 그렇게 배웠으니 그렇게 했을 뿐이에요.”
담담히 말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어쩔 수 없다는 듯 바라보지만, 어머니의 신앙을 곱씹는 딸의 모습을 보며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용서와 사랑은 참 쉽지 않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고, 나는 그렇게 할 수 있는지를 질문하며, 죽음조차도 사랑으로 승리하신 예수님을 배워 우리도 사랑의 승리자가 되었으면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을 사랑으로 해결하는 승리자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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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제6주간(5월 25-31일)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는 희망으로
시간이 흘러 코로나의 기억이 점차 흐릿해져 가고 있습니다. 이미 많은 모임과 사회적 활동이 발 빠르게 원래의 생활로 돌아왔지만, 주일 미사 참례자 수와 공동체 참여 모습을 보면 신앙생활의 정상화만 늦는 듯합니다. 변화하는 세상에 맞추어 새롭게 태어나야 하는데 아직도 지각생이 되어버린 교회 공동체를 바라보며 기도합니다. 늦지만 꾸준히 주님께 도달할 수 있는 힘을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코로나 시기에 주일까지 공동체가 함께 미사를 봉헌할 수 없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저뿐만이 아니라 많은 신자들이 그 시기에 큰 충격을 받았고, 나름 대안들을 실천하였었습니다. 그러나 텅 빈 성당을 바라보며, 혹시나 신자들이 신앙생활의 맛을 잊어버리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든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 어느 날 한 할아버지의 고충을 듣게 되었습니다.
“신부님, 빨리 주일 미사를 다시 참례했으면 좋겠어. 처음에는 어색하기도 했지만 점차 게을러지면서 편해지는 것 같기도 했는데… 이젠 아닌 것 같아. 오히려 더 힘들어. 평화방송으로 미사하는 게 더 힘들어.”
그래서 저는 텔레비전만 틀면 되는데 뭐가 그렇게 힘드시냐고 반문했습니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하셨습니다.
“그럴 줄 알았는데… 집에 있는 마나님이 이래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 아침부터 정갈하게 씻고, 양복까지 입히고, 텔레비전 앞에서 단정하게 미사를 봉헌하게 만들어. 재미없어. 쯧쯧”
할아버지와 저는 서로 바라보며 웃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신자들에 대한 제 걱정도 덜게 되었습니다. 이런 어르신들이 있기에 늦을 수는 있지만 신앙이 죽지는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버지 곁으로 가시지만 우리에게 다시 돌아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는 희망으로, 늦지만 다시 돌아올 우리 신앙공동체가 너무 늦지 않고, 오히려 새롭게 성장하기를 다시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