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딕토 16세(재위 2005-2013)는 교황으로 선출된 직후의 연설에서,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재위 1978-2005)의 2001년 교서 「새 천년기」 57항을 인용해, “이제 막 시작된 이 세기에 우리의 위치를 확인할 확실한 나침반을 우리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에서 발견”한다고 강조하였다. 그러므로 레지오 마리애 교본을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빛에 비추어 성찰하는 것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과제이다.
가톨릭교회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중세 후기 이래 제2차 바티칸 공의회까지의 시기에서, 과장된 마리아 신심은 삼위일체 하느님께 대한 흠숭의 신앙(흠숭지례 欽崇之禮)과 마리아 공경의 신심(상경지례 上敬之禮)의 수준이 잘 구분되기 어려울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특히나 성령의 역할이 사실상 마리아에게 양도되거나 귀속된 것처럼 보이는 게 가장 큰 문제점이었다.
이처럼 과거에서부터 지금까지 있어 왔던, 복되신 동정녀를 거의 신적인 지위에까지 높이고자 하는 과도한 신심 및 지나친 공경의 흐름과 경향은, 성경이 증언하는, 성모 마리아께서 실제로 몸소 보이셨던 삶의 모습과는 잘 들어맞지도 않으며, 신학적으로 여러 가지 문제의 소지를 안고 있다.
현재의 레지오 마리애 교본에서는 과거의 그처럼 과장된 마리아 신심의 흔적이 아직도 수정되지 않은 채 부분적으로 남아 있다. 이는 현재의 레지오 교본의 신학적 기조가 아직도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에 따라 충분히 쇄신되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하루속히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빛에 비추어 교본의 신학적 내용이 재성찰 되고 수정되어야 한다. 새로운 단원들을 인도하기 위해서, 특히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입각한 교리교육을 받고 입교한 젊은 세대의 교우들을 레지오로 이끌기 위해서는 이 교본의 신학적 문제가 꼭 해결되어야만 한다.
이와 관련해,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의 현대 가톨릭 신학, 특히 성령론의 대가인 이브 콩가르(Yves Congar, 1904-1995) 추기경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가톨릭 영성가들의 일부 표현들은 비판받을 수 있다. 그들은 은총과 영적인 삶의 직접적인 효과를 마리아에게 귀속시키기 때문이다. 그러다가는 하느님과 성령의 양도할 수 없는 업적까지도 마리아에게 돌릴지 모르겠다. 그런데 마리아의 역할은 그녀를 육화하신 말씀의 어머니로 만들고 모든 거룩함과 성인들의 통공의 원리이신 성령의 역할 안에 자리하고 있다.” 이브 콩가르 추기경, 「나는 성령을 믿나이다1」, 백운철 옮김, 가톨릭출판사, 2004, 283쪽.
과유불급(過猶不及)이란 말처럼 뭐든지 지나치면 오히려 해가 될 수도 있다. 성모 마리아께 지나치게 과장된 공경을 드리고 거의 삼위일체 하느님과 비슷한 지경으로까지 마리아를 들어 높이려 하는 것이 과연 마리아께 드리는 합당하고도 진정한 공경인가를 질문해야만 한다. 실상 마리아 자신의 삶은 하느님께 대한 순종과 겸손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성모 마리아의 자기 이해와 자기규정은 바로 삼위일체 하느님의 구원 역사에 전적으로 순종해 동참하는 겸손한 “주님의 종”(루카 1,38)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는 성부 하느님의 구원 계획안에서 성자 그리스도에 의해 정초되고 성령에 의해 생명력을 얻어서 본격적으로 구원 활동을 시작한 교회 공동체의 전형(type)이자 모범(model)이 된다.
현재 한국 천주교회 내에서 사용되는 레지오 마리애 교본(한국어 번역본)을 살펴보면, 바로 그러한 관점에서 신학적으로 동의하기도 어렵고, 계시적 관점에서는 근거가 없으며, 오늘날 신앙의 시각에서 볼 때 적절치 못한 내용들이 일부 있다. 일부 정확하지 못한 번역 때문일 수도 있지만, 상당수는 교본의 영어 원문 자체에서부터 발견되는 문제들이다.
이처럼 레지오 교본의 몇몇 과장된 표현이나 문체는 향후 반드시 수정되어야만 한다. 필자는 이를 위해서 레지오 마리애 세계본부(Concilium Legionis Mariae)와 대화하며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서서히 접근해 나갈 생각과 계획을 지니고 있다.
다음은 레지오 교본에서 발견되는, 신학적으로 재성찰 되고 쇄신되어야 할 부분 중에서 몇몇 예를 든 것들이다.
“하느님께서 다른 모든 피조물에게서보다도 마리아 한 분에게서 더욱 큰 보람을 느끼신다”(제5장 37쪽).
“성모님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시면 아무런 은총도 얻을 수 없다”(제5장 39쪽).
“세상을 새롭게 하시는 일로부터 가장 작은 은총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은 성령께서 베풀어 주시며 이 일을 대행하는 분은 언제나 성모님이시다”(제7장 71쪽).
“교회는 성모님을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협력자(helpmate), 즉 은총의 중재자(Mediatrix in grace)로서 그리스도의 구속 사업에 협력하시는 공동 구속자(Co-Redemptrix in salvation)로서뿐만 아니라 실제로 ‘그리스도와 닮은 분’이라고도 선언할 수 있는 것이다”(제7장 72쪽).
“성모님의 중재 없이는 성령의 중재도 바랄 수 없을 만큼 두 분은 하나 되어 계신다”(제7장 73쪽).
이러한 문제와 관련하여,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2003년 서한을 통해, 레지오 마리애의 주요 수호자인 “몽포르의 루도비코 성인(St. Louis-Marie Grignion de Montfort, 1673-1716) 시대 이후로 이루어진 마리아 신학에서의 현저한 발전은 주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결정적 공헌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한다. 따라서 요한 바오로 2세는, 레지오 마리애 교본에 나타난 신학적 기조의 주요 출처요 근거가 되는 “몽포르의 루도비코 성인의 가르침은 본질적으로는 타당성을 갖고 있는 것이면서도 오늘날에는 공의회에 비추어 재독되고 재해석되어야만 한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신앙교리위원회, 「올바른 레지오 마리애 신심: 레지오 선서문에 관한 신학적 성찰」,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24, 19쪽.
라고 특별히 강조하였다.
여기에서 요한 바오로 2세가 강조한, 마리아 신학을 위한 기준점이 되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가르침이란 곧 성모 마리아에 관하여 설명하는 「교회 헌장」(Lumen Gentium) 제8장을 가리킨다. 따라서 “그리스도와 교회의 신비 안에 계시는 천주의 성모 복되신 동정 마리아”라는 제목의 「교회 헌장」 제8장은 모든 마리아 신심과 신학이 그 빛에 비추어 재해석되어야 하는 현대 교도권적 가르침의 우선적 기준이 되는 것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현대의 교황 문헌들에서는 성모 마리아에 대한 적절한 공경을 제시하면서도, 무엇보다도 복되신 동정녀께서 보여주신 겸손과 성덕의 모범 및 그 정신을 본받아야 함을 강조한다. 사실상 이는 우리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이자 사명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