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는 특별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저 주어지는 하루를 기도로 받아들이며 살았을 뿐이에요.”
서울 방배동성당(주임신부 권철호 다니엘) 순결하신 모후 Cu. 직속 구세주의 모후 Pr. 회계로 봉사하는 이윤정 소화데레사 자매는 40여 년 동안 레지오 마리애 단원으로 살아오며 체험한 기도의 힘을 굳게 믿는다. 삶의 갈림길마다 그가 붙잡을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주님께 매달리는 기도’뿐이었다고 고백한다.
어린 시절 세례를 받았지만 결혼 후의 삶은 신앙을 지키기에 녹록지 않았다. 유교적 전통이 강한 종갓집으로 1년에 열네 차례의 제사를 모셔야 했고, 대여섯 번 아침상을 차려야 하는 고된 시집살이였다. 육신의 고단함은 얼마든지 감내할 수 있었지만 집안에 불화를 일으키고, 갈등을 빚는 신앙생활의 어려움은 정신적인 고통으로 다가왔다. 성당에 다녀온 날이면 가시 돋친 말과 차가운 시선이 따라와 신앙생활을 방해하기 일쑤였다. 집안 어른들은 기도하는 모습조차 마땅치 않아 했다. 궁리 끝에 작은 골방을 선택했다. 온 식구가 깨기 전인 이른 새벽, 모두가 잠든 늦은 밤, 오로지 혼자 깨어 기도에 매달렸다. 하느님은 그 기도를 외면하지 않으셨다.
“성당에서 우연히 고등학교 후배를 만났어요. 집을 방문해도 되겠냐고 묻더니 2명이 가정방문 해서 레지오 입단을 권유했죠. 집에 찾아온 손님에게 면박을 주는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지만, 그 일이 계기로 입단을 결심했어요. 입단하자마자 회계 직분을 주시더라고요. 그렇게 시작한 레지오 활동이 40여 년이 지났네요.”
뭐든 맡겨진 일에 순명하고, 책임을 다하는 이윤정 소화데레사에게 레지오 활동은 기도를 체계적으로 배우고, 기도는 내가 아닌 타인을 위해 바치는 것임을 일깨워주었다. 기도 생활의 정도를 걷게 하는 수련의 통로였다. 7개 Pr.을 거치면서 4간부의 직책을 맡아 봉사했다, 4개 Pr.을 분단시키기도 했으며, 아들(안상봉 가브리엘)과 딸(안예화 세실리아)을 협조단원으로 이끌었다. 아들과 같은 날 세례받은 며느리 박미라 미카엘라까지, 신앙의 씨앗을 가정 안에 심고 키웠다.
기도의 응답으로 주신 성가정의 축복
소화데레사 자매의 신앙 여정에서 가장 긴 시간과 인내가 필요했던 것은 남편의 회심이었다. 신앙을 완강히 거부하던 남편에게 자매는 말로 설명하거나 설득하지 않았다. 대신 작은 골방에 모신 성모상 앞에서 전구기도를 드렸다. 수십 년 동안 이어진 침묵의 기도였다.
그 긴 기다림은 뜻밖의 방식으로 응답을 받았다. 손녀(안자견 그라시아)가 남편의 손을 잡고 성당에 나가기 시작했다. 2005년 마침내 남편은 세례를 받았다. 자매는 그날을 떠올리며 “그분이 하느님을 만난 것만으로도 제 인생의 가장 큰 은총”이라고 환하게 웃었다. 10년 전 선종한 남편의 사진 앞에서 매일 아침기도로 아침 인사를 건넨다는 소화데레사 자매. 지난해 또 하나의 기도 응답이 찾아왔다. 협조단원이었던 아들 가브리엘이 레지오 단원으로 선서식을 거행했다.

“고맙게도 아들은 손녀와 함께 매주 교중미사를 참례하고 있어요. 당시 Co. 단장님이셨던 이정우 미카엘 형제님께서 저희 가족을 유심히 지켜보셨는지 어느 날 아들에게 입단 권유를 하셨죠. 저는 그저 기도했을 뿐이에요. 사실 20개월 동안 포기하지 않고 애써주신 미카엘 형제님의 공로가 큽니다.”
소화데레사 자매의 협조단원이었던 아들 가브리엘은 입단 후 바로 손녀 그라시아를 협조단원으로 이끌어 세대를 잇는 성모님의 군단 가정으로 거듭나는 경사를 맞이했다.
겸손으로 이어진 봉사의 자리
자매가 레지오 생활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긴 덕목은 겸손이었다. 아침마다 “오늘 만나는 사람 앞에서 겸손하게 하소서”라는 기도로 하루를 시작했다.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한 걸음 물러서 공동체를 바라보는 태도는 회합 안팎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났다.
봉사는 정해진 활동에만 머물지 않았다. 병원 투석실에서 투석이 끝난 환자의 팔을 눌러 주는 일, 장애를 갖고 혼자 거주하는 어르신에게 8년 동안 반찬을 나르며 돌봄을 했다, 길에서 채소를 팔던 60대 여성을 오랜 시간 보살피기도 했고, 노인 무료 급식 봉사까지 마다하지 않았다. 그것은 ‘해야 해서’가 아니라 마음이 움직이는 자리에서 이어진 봉사였다. 그러나 자매는 자신의 선행마저 돌아볼 때가 많았다. ‘그분이 노숙자였다면 과연 내가 그렇게까지 했을까.’ 봉사 뒤에 남는 것은 만족이 아니라 더 낮아지고자 하는 마음이었다.
오늘도 소화데레사 자매는 하루의 중심을 기도에 두고 산다. 매일 아침 성경 필사를 한다. 세 번의 완독과 함께 진행한 성경 필사는 아홉 해의 시간을 지나고 있다. 화려한 말이나 드러나는 공로보다 인내와 침묵, 그리고 기도로 차곡차곡 쌓아 올린 신앙의 여정. 그녀의 삶은 ‘레지오 단원으로 산다’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조용하지만 깊이 있게 증언한다.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봉사하게 해 달라고 기도해요. 레지오든, 어떤 형태든 상관없이요.”
레지오 단원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 답은 인내로 견뎌낸 시간과 말없이 바친 기도, 그리고 자신을 낮추는 겸손 안에 있다. 그 조용한 삶이 곳곳에 있어 성모님의 군단을 지탱하고 있는 것이리라.
<사진 설명(위로부터>
- 이윤정 소화데레사
- 신리성지에서 구세주의 모후 단원들과 함께(좌)
2010년 11월 아들 가브리엘의 협조단원인 손녀 그라시아의 첫영성체 날(우)
- 지난 9년 동안 3회의 성경 완독과 필사를 해오고 있는 소화데레사 자매